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해회사 거품 사태 (문단 편집) === 남해회사의 설립과 운영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사우스 시 컴퍼니 문장.svg|width=100%]]}}}|| ||<:>{{{-1 남해회사의 문장.}}} || 남해회사는 본래 영국 정부에서 남미 지역의 무역을 전담할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로, 제1대 옥스포드와 모티머의 백작 신분이었으며 전직 재무장관이자 문학작품 수집가로도 유명했던 로버트 할리(Robert Harley, 1661~1724)[* 대한민국의 미국계 방송인 [[로버트 할리]]와는 한글 표기로는 이름이 같다. 다만 방송인 로버트 할리의 성의 영어 표기는 'Holley'다.] 백작이 세운 일종의 [[공기업]]이었다.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내세운 목적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채무상환 이자가 너무 커져서 그것을 떠넘길 차원에서 만든 회사였다. 이에 따라 [[1711년]]에 영국 정부의 부실채권과 증권 1000만 파운드를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하고 돈이 되는 [[노예무역]]을 독점할 수 있도록 특권을 주었는데데 할리 백작과 남해회사는 이 특권을 받고 매우 좋아했다. 남해회사는 정부 부채를 인수하면서 국채를 자사주로 교환해 줬는데 이와중에 발빠른 사람들은 55파운드의 국채를 미리 사들였다가 회사 설립 후 액면가 100파운드짜리 남해회사 주식과 교환했다. 하지만 남미를 장악한 나라가 가상적국인 [[스페인 제국]]이었으니 노예무역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. 특권을 받은 지 6년 만인 1717년에야 이익금의 25%는 스페인 국왕에게 귀속된다는 조건 아래에 1년에 단 한 번 영국 무역선이 [[페루]]와 [[칠레]], [[멕시코]]를 오가며 교역을 할 수 있다는 계약이 맺어졌지만 남해회사는 이 교역으로 이익은커녕 [[자본잠식|자본금만 까먹었다]]. 게다가 이듬해인 1718년에는 스페인과 영국 사이 전쟁이 발발하여(4국 동맹 전쟁) 스페인이 영국 선박의 입항을 금지시켜 남해회사는 200만 파운드의 빚을 지게 되었다. 그러자 남해회사는 노예무역 대신 [[금융]] 쪽으로 눈을 돌렸다. 당시 영국에는 잉여자본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이를 노리고 [[복권]] 형식의 [[채권]]을 판매했는데 '''이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.''' 이것이 성공을 거두자 남해회사는 본격적으로 금융회사로의 변신을 추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